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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동주의 마지막 詩
공덕수
2007. 6. 2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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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저작 : 1942년 ( 26 도쿄 릿쿄대 #1 )
도쿄에서 쓴 시詩
유언 - 윤동주
후어-ㄴ한 방에
유언은 소리 없는 입놀림.
바다에 진주 캐러 갔다는 아들
해녀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밤에사 돌아오나 내다 봐라-
평생 외롭던 아버지의 운명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
외딴 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 밤.
※저작 : 1937년 ( 21 광명중#5 ) 10월 24일
발표 : 1939년 ( 23 연전#2/4 ) 01월 23일 < 조선일보 > 학생란
연희전문 입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기전 북간도에서 쓴 마지막 시詩
간肝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저작 : 1941년 ( 25 연전#4/4 ) 11월 29일
연희전문 시절 마지막으로 쓴 시詩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저작 : 1942년 ( 26 연전졸업후 일본유학전 북간도에서 ) 01월 24일
연전 졸업 후 고향에 머물며 일본유학 수속을 위해 히라누마(平沼) 로
개명한 서류를 학교에 보낸 며칠 뒤에 쓴 시.
고국에서 쓴 마지막 시詩
흰 그림자 - 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와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 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드 것을 돌려 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저작 : 1942년 ( 26 도쿄 릿쿄대 #1 ) 04월 14일
도쿄에서 쓴 시詩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포옴에 간신이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때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 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저작 : 1942년 ( 26 도쿄 릿쿄대 #1 ) 05월 13일
도쿄에서 쓴 시詩
흐르는 거리 - 윤동주
으스럼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朴이여!
그리고 김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 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아보세'
몇 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뜨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에
금단추를 삐었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께 즐거운 내임來臨,
이 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저작 : 1942년 ( 26 도쿄 릿쿄대 #1 ) 05월 12일
도쿄에서 쓴 시詩
쉽게 씌여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저작 : 1942년 ( 26 도쿄 릿쿄대 #1 ) 06월 03일
도쿄에서 쓴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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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늘이 마지막이듯
글쓴이 : 표주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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