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와서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와서
8/15부터 8/17까지 2박 3일 봉정암 순례를 다녀왔다.
누구 말처럼 이번 봉정암 순례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싶어 잠시 그날을 더듬어 본다.
내게 가족처럼 지내는 탁마가 한 분 있다.
그 분의 권유로 이번 순례에 동참하게 되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아침이 밝았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여전히 하늘을 덮고 땅을 적시고 있었지만,
진신사리 친견하러 가는 길에 이깟 비쯤이야 대수랴 싶어 부푼 설렘을 안고 집을 나섰다.
첫날엔 전 대통령이 참회하며 머물렀다던 백담사를 거쳐
동자승이 5세에 성불하였다는 오세암에서 하루를 묵었다.
백의관음 앞에 섰을 때 솟아오르는 희열감과 감응, 동자전에서의 알 수 없는 벅참과 눈물... .
이를 뒤로하고 봉정암 오르는 가슴에선 정근이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한발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깔딱고개를 넘고 또 넘어 다섯번째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앞서 가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서서 웅성거렸다.
그들 앞에는 커다란 벌들이 왕왕대고 있었다.
봉정암에서 내려오던 어떤 사람이
날아다니는 벌 한마리를 잡겠다고 내리친 것이 벌집을 때린 모양이었다.
왕왕거리는 벌 사이를 뚫고 가자니 쏘일까 겁나고,
뒤로 물러나자니 밀려오는 인파로 인해 물러날 데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우의나 바람막이를 입고 낮은 자세로 통과하기로 하고
앞의 사람이 먼저 건너갔다.
무사통과.
나도 따라했다.
출발하려고 몸를 낮추는 순간 머리가 이미 벌한테 쏘여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며 머리의 벌을 털고 있는데,
언제 쏘였는지 왼팔뚝에도 따끔, 오른쪽 팔꾹에도 화끈, 손목에도 욱신,
머리에는 몇방을 맞았는지 화끈거리고 욱신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혈관에 쏘이면 죽는다던데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오던 길로 돌아가자니 너무 멀고,
앞으로 가자니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이 아직도 두개나 남아 있었다.
울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옴 마니 반메 훔'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앞으로 가자.
봉정암에 올라가면 바르는 약이든 먹는 약이든 얻어 먹을 수 있겠지'하는 오기가 생겼다.
봉정암까지만 올라가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을동 살동 깔딱고개를 기어 올랐다.
머리가 얼마나 아픈지 욱신거리는 다리의 아픔은 아픔인 줄도 몰랐다.
드디어 봉정암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허겁지겁 종무소를 찾아 사정을 말하고 약을 얻을까 했는데,
워낙 높은 산꼭대기라 바르는 약이든 먹는 약이든 아무 것도 없고,
해열제 하나 먹고 찬물에 머리를 넣고 열을 식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면장으로 달려가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머리를 담갔다.
아이고 물은 또 얼마나 차갑던지... .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머리속이 얼얼했다.
두시간이 넘는 동안 죽지 않았으니 살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방저방 돌아다니며 약을 구해보았다.
불행중 다행인지 불행중 불행인지 남편이 뿌리는 파스를 구해왔길 온 머리와 팔에 뿌렸다.
욱신거리는 머리가 더 욱신거리는 것이었다.
뿌리고 살펴보니 근육통에 바르는 파스였다.
어머마~그래도 이게 어디야. 감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얼마나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지 탱탱 부은 팔뚝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고,
어떻게 보면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속이 매스꺼운 것 같기도 하였다. ]
그러면서 속으론 '설마 죽기야 하겄어'
그런 내게 수인 스님은
"괜찮아 괜찮아, 약사불 선물이야.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하시며 달래주시고,
탁마는
"봉정암 잘 왔네~. 약사부처님의 선물 받았으니 얼마나 좋노.
돈 주고도 못 맞는 봉침을 7대씩이나 맞았으니 일곱달은 밥 안 먹어도 되겠네" 하시며 놀리신다.
그 다음날 되니, 벌에 쏘인 데가 벌겋게 부어올라 열이 펄펄 나고 가려워 견길 수 없었다.
잘 쏘이면 봉침, 잘못 쏘이면 독침리라더니, 죽지 않고 살았으니 아마 난 봉침을 맞은 듯... .
그로부터 꼬박 한달을 벌몸살 앓았다.
남들은 한방 쏘이고도 힘들어 난리라는데
일곱방이나 쏘였으니 오죽했으랴.
그러고도 살었으니 분명 약사여래불 선물인게다.
2014년 여름 봉정암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