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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배우며 ♬

2007 신춘문예 당선시 모음

[국제신문] “타임캡슐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 / 정태화

놋쇠숟가락 하나가 여닫이문 깊숙이 빠져 있었어 문고리 구멍에 꽂혀 타다닥 불
꽃 튀어 오르는 길 척추脊椎를 느끼는 그림자가 일렁이는 달빛 파도에 쓸리며 흐느
적거리고 있었어

사내들 깊은 밤 주막거리 화투짝 속살에 파묻혀 놀고 있는 동안 공산명월空山明月
밝은 달이 만삭滿朔의 몸 쏟아져 내리고 때때로 주인 버리고 오는 신발들이 보이는
시간
그 신발 뒷굽을 척척 빠져나온 발자국들
저희들끼리 우루루 나뭇잎 따라 구르다가
돌담장 호박넝쿨 아래로 숨어 들어가 잠잠했어

이른 아침 백주에 궁둥이 까고 있는 호박덩이 몇몇에
어머니가 짚으로 엮은 똬리를 받쳐주다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오줌을 누셨어
그 곳에 둥글고 하얀 어머니 궁둥이가 오래도록
내려앉아 있었어

밭두렁 무성한 잎새 바지 안에 잘 익은 오이들 매달려 있었지 이웃집 밭이랑에서
물오른 가지들이 불쑥불쑥 일어섰어 마음껏 부풀어 팽팽한 그것들과 함께 고추밭에
태양초 고추가 어찌 그리 뜨겁던지 퍼질러 앉은 밭고랑에
매끈매끈 고구마들이 얼굴 내밀고 있었어
저녁놀이 아궁이에서 왈칵 숯불을 뒤집어 놓을 때
어머니 볼 발그레 익어서 돌아오셨지

참 이쁘다 우리 어머니 태양초 고추 하나 머금은 듯 입술 붉은 어머니 고무신 탈
탈 털어 낼 때쯤이면 명命 짧은 어머니의 사내가 내려놓은 울음들이 달려 나왔지
왈칵 기다림이 반가운 아이들
앞장세운 변성기의 아이 하나가
감나무 키 큰 그림자
사립문 밖 보내놓고 있었지

호롱불 밝혀야 어른어른 떠오르는 밥상
주춤주춤 아랫목이 내어놓은 보리밥 속에
언제 숨어들었나 고구마들 숨죽이고 있었지
등뼈를 쓰다듬는 어머니 능숙한 손길에
씨앗들 모두 빼앗기고 얌전해진
가지나물 오이냉채가 입맛을 당겼지

놋쇠숟가락으로 식구食口들이 밥을 먹고 있었어.

[심사평] / 최하림, 정일근, 최영철

시대가 어려울수록 시는 빛나는 법이다. 늘어난 시를 읽으면 행복했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신인의 패기와 개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잘 만들어진, 신춘문예의 새로운 전형을 이루는 시들이 많았다.
최종심에 '아버지, 꽃씨를 심어요'(석지영·대구), '기차 떠나는 새벽'(이미정·울산), '스트랜딩 증후군'(김초영· 전남 순천), '무늬의 힘'(이현수·전북 진안), '권태'(김성순·울산) '타임캡술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정경화· 경남 함양) 등 6편이 남았다.
'아버지 꽃씨를…'과 '기차 떠나는 새벽'은 시적 성숙을 보여주었으나 시인의 힘이 부족해, '스트랜딩 증후군'은 신인의 힘을 가졌으나 시의 성숙이 부족해, '무늬의 힘'은 완벽한 시였으나 자신의 틀에 안주하고 있어 '권태'와 '타임캡슐에…'가 마지막 경합을 가졌다. 두 편의 시 모두 신인의 자격을 갖춘 시였다. '권태'는 물 흐르는 듯이 흘러가는 상상력이 빛났으며 '타임캡슐에…'는 싱싱한 상상력이 가득했다.
오랜 토론을 통해 '권태'가 시적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이나, 다소 산만하지만 좀 더 가능성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에…'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자연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풀어간 당선 시는 시인이 오랜 시간 꾸준하게 독학으로 개성적인 습작을 해왔음을 짐작케 해주었다. 또한 남성적인 힘과 당당한 시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좀 더 깊어지는 용맹정진을 바란다.


[무등일보] “팥죽을 끓이며” / 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선
믹서에 마저 갈아 체에 거른다
헤쳐진 살 고루고루 퍼지게
잘 저어야 하는데 반죽 다듬는 사이
파르르 넘친다 아, 이 불같은 성질
저어주지 않으면 밑이 타고
위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야 마는
천천히 저어야만
지 성질 온전히 풀어지는
압축된 열
그래서 팥죽은 붉다.

[심사평] "기본적인 시적 역량, 독창성 돋보여" 허형만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몽유도원도' 외 4편, '젊은 도서관' 외 3편, '팥죽을 끓이며' 외 2편, '불이 짓는 집' 외 3편, '아우슈비츠' 외 3편, '썩는다는 것에 대하여' 외 3편 등이었다.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결같이 신인의 시는 참신해야 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튼튼한 시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새로운 상상력과 언어 사용, 시적인 표현과 리듬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아울러 시적인 기량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기성 작품과는 다른 자기만의 체험을 통한 독창적인 내용과 시 형식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소재와 표현기법이 표절을 의심할 정도로 기성 작품의 냄새가 짙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일단 발표되었다고 판단된 작품은 제외시켰다. 또 최종 확인 과정에서 기성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응모자의 작품도 제외시켰다.
장시와 산문화, 기존 신춘문예 당선작의 아류는 물론 언어의 밀도가 떨어지거나 추상성으로 인해 주제의식이 선명하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진부한 소재와 개인별 응모작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적된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는 '아우슈비츠'와 '팥죽을 끓이며'를 다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응모작의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단단하고 화자의 의식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과 신선함이 인정된 '팥죽을 끓이며'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한편 기성 작품의 흉내나 냄새의 혐의가 전혀 없는 신선한 이미지로 조류독감에 의해 도살처분 돼야 하는 닭의 현실을 아우슈비츠로 상징화한 작품 '아우슈비츠'에 대하여도 장시간 논의가 있었음을 밝혀둔다.


[경인일보] “소금쟁이를 맛보다” / 한창석

하늘과 수면 사이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사내는
愁心이 깊어 차라리 소금이 되면
감옥의 水深을 가늠해 볼 수 있을까 마음을 절였다
蓮塘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싶지만
후들거리던 다리 그 어디에
그처럼 완강한 삶의 근육이 붙어 있었는지
그래도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도무지 가라앉을 수가 없다
차라리 발을 굴러 하늘로 날아오르려 해도
날개가 없어 새의 그림자를 따라 못의 언저리까지 질주해 볼 뿐
潛泳도 昇天도 하지 못한 채 세상 바람이 죄다 그의 몫이다
젖을 수 없는 못은 도리어 沙漠
내려다봐야 보이는 하늘은 도리어 苦海
잔비를 맞으며 세상을 미끄러진 하루
잔비에도 등허리가 시큰했을 사내 생각에 코허리가 시큰하다
圓과 圓이 부딪쳐 깨어지는 수면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흐느끼는 세상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렸을 사내
盡人事의 땀이 마르고 응답하지 않는 神을 향한
巫女의 눈물마저 다 마르고 境界에 갇힌 자
마른 영혼을 찔러 혀에 가만히 대 보니
몸서리쳐지도록 짜다
타들어 간 鹽田의 까만 소금
刑期를 가늠할 길 없는 사내 어느 새
철없이 겁 없이 세상을 지치는 어린 새 끼 들을 수습하여
水草 사이로 부끄럽게 여윈 몸을 감춘다.

[심사평] “생활 속 현상 잡아낸 감각적인 눈, 삶의 철학 이끌어낸 힘 돋보여” 김정환, 도종환

시를 쓰는 우리도 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 서서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산다.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가 시의 화자가 느꼈던 그 경계의 아슬함과 위태로움은 시에도, 시를 쓰는 삶에도 역시 매일 찾아온다. "잠영도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가라앉을 수도 날아오를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경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고해(苦海)를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건너가는 일, 그게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밀도 높게 형상화하고 있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시적 긴장이 살아 있고 시의 내면이 꽉 차 있다. 언어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끌려가기보다는 삶에서 우러난 시가 좋은 시라는 믿음을 견지하면 좋겠다.
‘야영'도 삶과 언어가 육화되어 있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작품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동양일보] “오월” / 김영식

아이가 굴렁쇠를 굴린다
빈 골목이 출렁거린다
투명한 바퀴가 오후의 적막을 감는다
파닥거리며 햇살과 바람이
허공이 한 아름씩 감겨든다
감긴 것들이 말려 들어가
둥근 시간이 된다, 제 몸 속
길을 떠밀며 달려가는 아이

플라타너스 강둑 위
굴렁쇠가 아이를 굴린다
나무그늘 아래서 아이는
새소리처럼 지저귄다
자궁처럼 환한,
굴렁쇠 안 깊숙이 둥근 산이 눕는다
둥근 물소리도 따라 눕는다

들녘 끝
은빛실타래가 천천히
감긴 길을 풀어낸다
고요하던 풍경이 수런거린다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길섶
햇살과 바람이 풀린다
노을 몇 점 걸어 나와
강가에 걸터 앉는다

텅 빈, 허공을 밀고 가는 아이
우주 한켠, 챠르르
지구가 굴러간다, 오월이
푸르게 자전한다.

[심사평] 양채영

시인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든 안 되든 시인의 위의(威儀)와 자존심과 겸손함을 견지해야 된다. 남은 시편은 김영식의 ‘오월’ 외 4편과 김민영의 ‘내 오두막의 낡은 문’ 외 8편, 김은실의 ‘입동’ 외 5편이다.
김영식의 시편들은 밝고 경쾌하며 속도감과 감각적인 언어 교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에서도 ‘오월’은 작품의 소도구들인 소년, 굴렁쇠, 5월의 하늘과 푸르름, 강둑과 플라타너스들이 모두 ‘오월’이란 시를 위해 동질적으로 기여하고 헌신하고 있는 점이 그의 다른 작품 ‘단단한 틈’처럼 서로 견고하게 엉켜 있다.
김민영의 ‘내 오두막의 낡은 문’ 외 8편은 전편이 모두 산문성 시의 특장들을 지니고 있다. 행의 길이가 길고 유연함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 편하게 하고 있는 점이다. 행과 행간이 서로 주어와 서술 형식으로 이뤄진 점도 그렇다. ‘문을 열면 온전한 것은 오직 문뿐이고/ 그냥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오두막,/ 아주 낡은 문과 같은 내 마음이 사랑이었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오두막처럼 금세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는 장시를 쓰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은실의 ‘입동’ 외 5편은 입동 무렵의 스산한 농촌풍경을 아주 리얼하게 승화시켜준 작품이다. ‘메주를 쑤는 일은 마실 길을 끓이는 일이다/ 이곳저곳 쥐구멍 숭숭 난 마을 안 소문을 메우는 일이며/ 겨우내 헐거운 낮잠에 빠져 있을 농기구들의 텅 빈 시장기를 달래어주는 일이다’에 이르러서는 절창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기성 시인의 입동 시편들에서도 이렇게 가슴에 닿는 표현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앞뒤의 표현이 이 중심 표현을 떠받치지 못한 듯한 점이 아쉽다. 위 세 편 모두 훌륭한 특장들을 지니고 있으나 현대적 감각에 좀 더 어필한다고 생각되는 김영식의 ‘오월’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라일보] “구포역‘ / 김재근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는 거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거
마른 겨울빛 받으며 벌서고 있는 나무같이 견디는 거, 아닌가

구포역, 휘파람 불며 기차는 몰려오고
사람들은 낙엽처럼 또 부서져 내린다
찬바람 부는 광장구석 어깨 구겨져 서성이면
비릿한 무엇이 목 어디 가시처럼 걸리고

야산 겨울 숲 너머로 하루해가 풀썩 지고 있다

늦은 역 광장은 묘지처럼 이제 적막하다
빈 소주병은 시린 기억들을 꽉, 채우고 뒹굴고 있다
꺼져 가는 모닥불 옆 용도 폐기된 라면박스와 신문지에 쌓여
사내는 잠이 들고

작은 불빛들이 다가와 사내의 이마를 만진다
깜박이는 노숙의 굽은 등대, 상처여
이 후미진 외곽이 그대의 둥지였구나
물새의 알, 깨어진 알이여

바람과 겨울바다를 건너 그대가 흘린 모래알
나의 무릎에서 어지러이 날아 오른다
첫 차가 오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그대와 나의 겨울을 태우고
목쉰 기적소리 오래 울리며 떠나고 있다

[심사평] “눈물 도는 주지적 서정 풍요로워” 문충성

김재근의 <구포역>을 뽑는다. <구포역>풍경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 어른거려 그 감동을 지울 수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의식도 높이 샀다.


[전남일보] “냉장고, 요실금을 앓다” / 안오일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냉장고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하는가
그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있다.
뜨겁게 열 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열 식구의 투정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곤 하던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놓쳐버렸을까
먼 바다 익명으로 떠돌던
등 푸른 고등어의 때
연하디 연한 그녀 분홍빛 수밀도의 때
세월도 모르게 찔끔찔끔 새고 있다.
입구가 출구임을 알아버린
그녀의 깊은 적요가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낸다, 아직 부끄러운 듯
제 안을 밝혀주는 전등 자꾸 꺼버리는
쉰내 나는 그녀, 의 아랫도리에
화려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심사평] 고재종

시 지망생들은 왜 고향의 가난한 부모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을까. 그것도 왜 유년과 연관된 이야기에만 집중할까. 그렇게도 쓸 것이 없어서야 무얼 더 일러 말하겠는가. 아니 최소한 자본의 세계화 속에 신음하고 있는, 이 슬프고 노여운 세계를 사는 자기 삶, 자기 실존, 자기 존재조차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일국(一國)의 시인을 꿈꾸는 시 지망생들의 소재와 주제의식과 사유의 협소함에 대해 심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랫도리에 물 흘리는 냉장고의 내력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냉장고를 운영하는 우리네 보통 여성들의 고단한 삶과 시간에 의한 생의 마모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안오일, 그리고 새벽 별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상징하는 바가 아무 것도 없어서야'라며 지금까지 별에 대한 상상력을 완전히 전복해 버리는 이형경 등이 그럴 듯한 수확이었다. 이형경은 활달한 상상력과 전복을 통해 생의 이면을 들추려는 젊은 패기는 좋지만 시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허점이 많았다. 안오일은 많은 수련이 엿보이지만 상상력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형경에게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드린다.

[강원일보] “소라여인숙” / 김영식

 어린물떼새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해변가 모퉁이 외딴 집 한 채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
 「자는 방 잇섬」 걸어놓고 주인은
 종일 갯바위 너머 일 갔는지
 마당엔 젖은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집이 그리운 집게처럼 나는
 풍랑주의보 내린 어로(漁撈)를 정박시키고
 소금기 반짝이는 그 집 빈방에 들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바람소리 켜켜이 비닐장판처럼 깔린
 방바닥에 지긋이 손을 넣으면
 오래 흘러온 것들이 제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
 공중을 내려놓은 갈매기들이
 깃 속에 낮의 시린 부리를 묻는다
 등 굽은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세상에 없는 주소 꾹꾹 눌러 적으면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방파제 끝에서 인부 몇 돌아오고 나는
 옆으로 누워 밤을 견디는 긴발가락집게처럼
 온 몸이 녹아드는 아랫목에 누워
 홑이불 같은 수평선 한 자락 당겨 덮는다.


[심사평] 김영기, 최승호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영식의 `소라여인숙' 외 4편과 박창호의 `오십견'외 4편이었다. 박창호의 시는 일정한 작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체가 담백하고 과장된 진술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씌어진듯한 그의 시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상실감과 회한과 생의 덧없음, 차분한 어조는 시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면서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감상성은 그의 시의 큰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문 마늘을 먹으면/ 아버지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같은 진술이 그렇다. 감상을 절제할 수 있는 냉정한 가슴, 객관의 자리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선작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은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물들과 자신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와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같은 묘사도 빼어나지만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같은 표현은 탁월하면서도 참신한 맛과 멋이 있다. 신인에게는, 그리고 문학에는 독자를 설레게 하고 놀라게 하는 이런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소라여인숙'은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무척 신경을 쓴 작품이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다른 시들은 `소라여인숙'과 다소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썩은 생선들과 고래냄새, 그리고 범죄와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신인의 독특한 시 시계를 우리는 주목할 것이다.


[불교신문] “겨울 내소사” / 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 없는 때
눈 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 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 들어 눈 뭉치를 털어 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 앉은 장광 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 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 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심사평] “서정시의 ‘결’ 불교적 사유로 잘 표현” 최동호

불교 관련 소재가 눈에 많이 띄었다. 불교적 가르침이란 중요한 뜻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시 작품으로 승화 내지 변용시키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대한 관심사이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지닌 신인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신춘문예의 역할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최종적으로 ‘추사불이선란도’와 ‘겨울 내소사’ 두 편을 놓고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정할지 고심하였다. ‘추사불이선란도’는 선미가 승하고 시적 통찰이 빛나고 있었으나, 시적 구성과 언어적 세련미는 ‘겨울 내소사’에 조금 뒤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겨울 내소사’는 일반적인 서정시의 결을 잘 살리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에서 포착되는 섬세한 화자의 눈길은 시행의 분절로 드러내면서 고요 속에서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을 통해 장엄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읽어내는 동시에 신생의 열망을 표현하는 능력은 그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시작 수련을 거쳤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추사불이선란도’는 마지막 결구에서 “내게 있어 추사의 붓끝은 너무 아득하고 깊어 보였다”라고 하는 설명적 진술로 마무리되어 결과적으로 시적 긴장을 약화시킨 것이 결정적 아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