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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메아리 ♬

지구점명상

 

만물은 파동이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이다. 언뜻 우리는 고체 형태의 물질들을 속이 꽉 찬 물질로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물체는 텅 비어 있다. 가장 간단한 구조인 수소 원자를 보면, 원자핵의 크기가 사과만 하다고 가정했을 때 그 주위를 도는 전자는 10km나 떨어져 돌고 있는 것과 같다.

사실상 핵과 전자 사이는 텅 빈 공간인 것이다. 사람도 실은 90% 이상이 텅 비어 있다. 다만 우리의 눈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눈이 X선만큼 밝은 눈이라면 사람을 볼 경우 X선 사진처럼 뼈만 어렴풋이 보일 것이다. 따라서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해골이 걸어 다니는 모습만 보게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해골로만 보이게 되어 사랑의 감정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X선 보다 더 파장이 짧은 감마선 눈이라면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된다. 하늘이 인간에게 인간을 인간답게 보일만큼의 눈을 준데 대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물체를 꽉 차게 보이게 할까. 그 까닭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지각하는 빛의 파장, 곧 진동 폭이 전자와 핵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가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아주 엉성한 그물이 있는데, 이 그물눈의 크기보다 훨씬 큰 공으로 그 그물을 더듬으니 막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모든 물체는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진동하는 폭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 고체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모든 물체는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그 에너지는 끊임없이 진동한다. 그것을 파동이라고 한다. 동식물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는 그 나름대로 파동에 실린 정보를 해석할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파동에 실린 정보의 내용을 이용해 스스로 생육을 하며 생체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만물은 생성되었다가 파괴되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것을 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살아온 기억의 알맹이를 갖고 있다. 이 기억의 알맹이가 모이고 모여 자라나면서 서서히라고 하는 관념을 갖게 된다.

 

 

 

기억 알맹이 '아함카라'

 

지난 호에서도 말했듯이 라는 관념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경험의 세계를 일컫는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아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자기관념이라는 뜻의 아함카라(ahamkara)라고 한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기억 총체인 와 그 행위를 합쳐 카르마(karma)라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 )이 바로 카르마이다.

기억의 알맹이 즉, 아함카라의 알맹이는 그것이 알맹이이기 때문에 물질로서의 기능을 한다. 물질 즉, 알맹이는 주변의 것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인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 모든 물체가 갖고 있는 끌어당기는 힘이 바로 만유인력이다.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운동의 3가지 법칙중의 하나다. 뉴턴은 케플러의 만유인력을 통해 행성의 운동 법칙과 밀물과 썰물의 작용 원인을 설명했다.

어쨌든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기억 속의 것들을 느끼고 성취하고 소유하려 한다. 그것을 인간의 욕망이라 한다. 욕구가 채워지면 아함카라는 변형을 일으켜 다시 새로운 욕구를 일으킨다. 이처럼 아함카라가 변형을 일으키며 거듭해서 욕구의 대상을 바꾸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계속해서 윤회를 반복하는 것이다.

아함카라는 아함카라의 작용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작용도 동시에 갖고 있다. 고집통으로 뭉쳐진 아함카라가 자신의 잘못된 현재 상태를 해소시키려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자연법칙이다.

아함카라 이전의 상태, 아함카라가 존재하는 바탕의 세계(영화로 치면 화면)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을 기독교에서는 속죄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수행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우리가 깨쳐야 하는 것은 경험에 얽매이지 않는 경험 이전의 세계는 세속에 전혀 물들지 않은 청정한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함카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일컫는가. 그것은 크게 6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어릴 때부터 지금 이 시각까지 갖고 있는 일체의 버릇, 둘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고집, 셋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과 초-중-고-대학 그리고 책과 영화, TV 등에서 배운 모든 지식들, 넷째 내가 누군데 하는 자존심, 다섯째 젊었을 때부터 모아 온 재물, 여섯째 나의 명예 등이다.

이런 6가지에 대한 모든 집착을 놓아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지구점 명상법

 

바로 앞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기억의 알맹이 아함카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 버릇, 고집, 지식, 자존심, 재물, 명예 등 나의 6가지 집착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 바로 그것이 구도의 길로 가는데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삶과의 투쟁이며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지만참 나와 신의 세계를 모색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도정(道程)의 역사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온갖 파()를 파()하고 세 가지 사, 즉 私, , 邪로부터 자유로우며 결코 숭배하거나 숭배 받지 않으면서 누구나 쉽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없는가.

세속의 권한을 쥐고 있던 붓다, 목수의 아들 예수, 대상(隊商)의 무리에 섞인 범부였던 마호메트처럼 깨달음의 모험에 나섰던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의 도정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생을 마감하곤 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을 충실히 공부하면 이젠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나를 완전히 비워 그야말로 청정한 나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제 그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 방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다.

수련방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그 효과는 실로 매우 크다는 사실이 많은 수련자들로부터 확인되고 있다. 수련법의 명칭은지구점 수련법이다. 누구든지 자기 집 방안에서도 혼자서 스스로 수행할 수 있다.

준비하는 도구는 지구점 한 가지다. 우선 지구를 상징하는 직경 5mm 크기의 까만 종이로 만든 둥근 원 두개를 준비한다. 그것을 이름하여 지구점이라 한다. 그 지구점을 방바닥에서 높이 30cm 벽에 붙이고 자신은 벽에서 1m쯤 떨어진 곳에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로 앉는다. 그리고 거기로 향해 나의 아함카라를 던져 넣는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아함카라(ahamkara)는 인도말이며 자기관념이라는 뜻이다. 자기관념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습관과 집착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를 실상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과거는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아함카라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춘목(春牧) 칼럼니스트

종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