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사(禪宗史)
1. 선(禪)의 의의
禪이란 범어로 드야나(Dhyana)인데 이를 음사해서 한자로 선나(禪那),
다시 줄여서 선(禪)이라 합니다. 그 뜻을 해석하면 고요히 생각함(靜
慮), 생각으로 닦음(思惟修)입니다.
그리고
참선(參禪)이란." "첫째는 禪하는데 참여한다는 뜻이 있고, 둘째
는 "참례선지식(參禮善知識)하여 문선(問禪)한다"고 하여 이 말을
줄여서 "참선"이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곧 선지식을 찾아 묻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입니다.
이러한 참선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고락(苦
樂)의 양 극단을 피하고 중도의 깨달음을 성취하신 수행법인
것입니다.
2. 선(禪)의 기원
전통적으로 선의 기원은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서 찾는다.
삼처전심이란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고
하여
선가(禪家)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①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부처님이 중인도 북쪽에 있던
다자
탑 앞에서 설법하고 계실때 남루한 차림의 마하가섭이 늦게 도착하자
제자들이 멸시의 눈초리를 보낼 때 부처님께서 자신의 자리를
반쯤 내
어 주어 같이 앉으신 일.
② 영상회상 거염화(靈山會上 擧拈花):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들어보인 마음을 읽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말없이 미소를 지은 일.
③ 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부처님이 80생을 마감하시고
사라쌍수 밑에서
조용히 열반에 잡겨 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을 때
가섭이 늦게 도착하여 열반하시는 모습을 못본 것을 안타까워하며
울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인 일.
3. 선의 종지(宗旨)
가) 불립문자(不立文字)
나)
교외별전(敎外別傳)
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라) 견성성불(見性成佛)
禪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
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합니다. 언어이전의 생명 그 자체, 다시 말해서
활발발한 깨달음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 그 자체
는 언어와 문자, 형식과 논리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심인(心印)으로 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나 문자에 얽매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또한 '언어나 문자
에 얽매이지 않는다.' 라는 말마저 버려야 합니다.
불립문자의 진정한
뜻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지 결코 문자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교외별전(敎外別傳)
진정한 법(法)이나 도(道)는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입니
다. 경전은 단지 우리의 참된 면목을 바르게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
일 뿐인 것입니다. 물맛을 직접 보아야 제 맛을 알 수 있듯이 설명만으
로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전공부가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
나 언어나 문자가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세계는 교(敎) 밖에 따로 전
한 삼처전심(三處傳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삼처전심은 부처님과 제자
가섭
사이에 이루어진 마음의 형태입니다.
다) 직지인심(直指人心)
직지인심이란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 뚜렷이 밝
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으로서의 마음은 결코 참마음(眞心)이 아니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참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은 주체이므로
그것이 대상화되면 벌
써 그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라) 견성성불(見性成佛)
자신이 지닌 본래의 성품을 철저하게 보는 것을 견성이라 하였습니다.
본래의 성품이란 어느 때나 청정무구하여 절대의 그
경지이며 영원불변
한 것입니다. 이런 차별 없는 본성을 보았다 함은 법신의 부처님과 하
나 되는 것이며 그것은 내심의 부처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4. 선의 전래
삼처전심 이래로 부처님의 법은 마하가섭에게로 전하여 졌고,
마하가섭
은 아난존자에게 아난존자는 상나화수존자에게 그리고 28대 보리달마존
자까지 인도에서 전하여져 오다가 보리달마존자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혜
가대사, 승찬대사, 도신대사, 홍인대사, 혜능대사 까지는 법의 전수를
의미하는 의발(衣鉢)을 오직 한분에게 전해져 내려
왔지만 혜능대사 이
후로는 의발을 전하는 전통이 끊어지고 法을 여럿에게 전하게 되어 禪
의 황금시대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조도일(馬祖道一)下의 법을 이은 석옥청공선사에게서 태고보우국
사가 법을 전해 받으니 해동에 선종이 발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
고 조선중기 서산과 부휴로 나뉘어지게 되고 서산문하에서 환성지안선사
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오다가 잠시 그
전등의 불꽃이 희미해지던 차
에 구한말 경허선사가 근대선의 중흥조로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이
후 만공, 혜월, 혜봉 등의 선지식이
배출되었고 만공선사의 법을 전강선
사께서 이으셨던 것입니다.
법맥이란 법(法)을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어지는
견고하고도
도도한 흐름을 의미합니다. 법이란 진리인 것입니다. 특히 선종에서는
법맥을 선맥이라고 하여 강조하고 있고 어느
종파보다도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선종에서의 법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역사가 선종의 역사이며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선맥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맥(전등의 역사)
법 맥 | 게 송 |
가섭 존자 | 법이라는 본래 법은, 법도 없고 법이 아닌 것이 없음이니, 어찌 한 법 가운데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
아난 존자 | 본래 있음의 법(有法)을 전했더니, 전한 뒤엔 없음의 법(無法)이라 하더라. 제각기 깨달았으니, 깨달은 뒤엔 없음의 법(無法)도 없더라. |
상나화수 존자 | 법도 아니요,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 |
우바국다 존자 | 마음은 본래부터 마음이니, 본래 마음에는 법이 없도다. 법도 있고 본래의 마음도 있으나,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다. |
제다가 존자 | 근본 법과 그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네. 깨달았다고 하면 깨닫지 않음과 같나니, 마음의 법도 본래 없기 때문이라네. |
미차가 존자 | 마음은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없나니, 얻을 수 있다면 참된 법이 아니라네, 마음이 마음 아닌줄 깨달아 알면,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 수 있으리. |
바수밀 존자 | 마음은 허공 같아, 허공 같은 법을 보인다. 허공의 묘한 법을 알면, 옳고 그름도 법도 없다. |
불타난제 존자 | 허공이 안팎이 없듯, 마음의 법도 그러하다. 허공의 이치를 밝게 깨달은 것, 그것을 참된 이치를 바로 안 것이라 한다. |
복타밀타 존자 |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드러 내나니, 진실된 이치를 깨달으면, 참도 거짓도 사라지고 없네. |
협 존자 |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나타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아 들으면,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
부나야사 존자 |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 밝음과 어둠이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너에게 전하노니,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라. |
마명 존자 | 들어나고 숨음이 한 집안 소식이요, 밝고 어두움이 원래 둘이 아니로다. 이제 네게 깨달은 법을 주노니, 갇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
가비마라 존자 | 드러남도 숨음도 아닌법을 ,진실의 경지라고 한다. 숨고 드러남의 이치를 깨달으면, 지혜롭고 어리석음을 넘어서리. |
용수 존자 | 숨고 드러나는 법을 밝히려고, 해탈의 이치를 말하네. 법에는 마음도 얻을 수 없나니, 성냄도 기쁨도 본래 없는 것이라네. |
가나제바 존자 |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뜻은, 해탈의 이치를 설하기 위함일세, 법에는 진실로 얻을 것이 없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네. |
라후라다 존자 | 법에는 진실로 증득할 것이 없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네, 법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니, 어찌 안 밖이 생기리. |
승가난제 존자 | 마음의 법이 원래 나는 것 없으나, 인(因)의 땅에 연(緣)을 따라 일어난다네.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않듯, 꽂과 열매도 그러하네 |
가야사다 존자 | 종자가 있고 마음땅(心地)이 있으니, 인연이 싹을 나게 하도다. 싹이 나건 안 나건,인연의 법칙은 걸림이 없도다. |
구마라다 존자 | 성품에는 태어남이 없지만, 구하는 이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 법에는 이미 얻을 것이 없거늘, 어찌 결정하고 못함을 걱정하리요. |
사야다 존자 | 말끝에 무생법(無生法)에 맞으면, 법계의 성품과 같아지리니, 이렇게 바로 알면, 사(事)와 이(理)를 통달하리라. |
바수반두 존자 | 거품도 허깨비도 걸림이 없거늘, 어찌 알지 못하는가 법이 그 가운데 있는 줄 알면, 지금도 옛도 아니리라. |
마노라 존자 | 마음이 만 경계를 따라 움직이니,움직이는 곳마다 모두 그윽하다. 흐름에 따라 본 성품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
학륵나 존자 | 마음을 깨달을 때를, 부사의(不思議)하다 말 할 수 있나니, 분명하되 얻을 수 없고, 얻을 때는 안다고 할 수 없다. |
사자 존자 | 깨달음을 말할때, 지(知)와 견(見)이 모두가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지견이니, 지견은 언제나 지금 속에 있다. |
바사사다 존자 | 성인이 지견을 말씀하시니, 경계를 만날 적마다 그 아닌 것 없도다. 내가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도 없고 이치도 없도다. |
불여밀다 존자 | 참성품이 心地에 숨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도다. 인연따라 중생을 교화하니,방편으로 지혜라 부른다. |
반야다라 존자 | 마음 땅이 숱한 종자를 내네, 일이 일어나면 다시 이치도 생기네. 수행의 열매가 무르익어 깨달음이 원만해지니,꽂이 피듯 한 세계가 열리네. |
보리달마 존자 |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인데, 한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
혜가 존자 | 본래부터 마음 땅이 있었기에, 그 땅에 씨를 심어 꽃이 피지만,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며,꽃도 나는 것이 아니다. |
승찬 존자 | 꽃은 땅을 의지해 심고, 땅에 심었던 꽃이 피지만, 씨를 뿌려주지 않는다면, 꽃도 땅도 나지 않는다. |
도신 존자 |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에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 |
홍인 존자 | 유정(有情)이 와서 씨를 뿌리니, 인연의 땅에 열매 절로 열리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므로, 성품도 태어남도 없다. |
혜능 존자 |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도 집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찌 먼지를 일으키랴? 지각 있는 존재의 씨앗이 뿌려져, 밭마다 열매를 맺게 되리라. 지각 없이는 씨앗이 자랄 수 없고, 성(性)없이는 생(生)도 없다. |
6. 선의 유형
가) 닦는 사람의 마음에 따른 분류
나) 깨침의 정도에 따른 분류
다) 지역에 따른 분류
라) 수행하는 방법에 따른 분류
가) 닦는 사람의 마음에 따른 분류
⑴ 외도선(外道禪): 외도들이 천상에 나기위해 닦는 禪
⑵ 범부선(凡夫禪): 건강을 위하거나 액난을 소멸시키기 위해 범부들이
닦는 禪
⑶ 소승선(小乘禪): 무상을 관(觀)하고 부정관(不淨觀)등을 하면서 세
상을 멀리하며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며 고요한 것만을 즐기는 禪
⑷ 대승선(大乘禪): 법계의 공(空)을 관(觀)하고 중도와 실상을 관하는 禪
⑸ 최상승선(最上乘禪): 관(觀)하는 선이 아니라 그대로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禪
나) 깨침의 정도에 따른 분류
⑴ 의리선(義理禪): 경전이나 禪의 이론을 보고 눈치채서 체득하는 禪
⑵ 여래선(如來禪): 여래선이란 말은 <능가경(能伽經)>에서 규봉종밀(圭
峯宗密)스님은 이것으로써 교선일치라 주장하여 최상승선이라 하였습니
다. 그러나 여래선의 판별은 오히려 문자의 알음알이인 이(理)에 떨어
져 달마가 전한 선과 다르다고 하여 여기에서 조사선(祖師禪)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⑶ 조사선(祖師禪): 남종선(南宗禪)이라고도 합니다. 육조인 혜능스님에
게서 시작된 선종의 오가칠종(五家七宗)은 전부 이 조사선에 포함 됩니
다. 조사선은 조사의 언행을 실마리로 삼아 선을 실수(實修)하게 됩니
다. 그래서 인도로부터 전래된 경전보다는 가까운 조사의 언행을 중시하
고 그것이 일종의 공식과 같은 것이 됨으로써 공안(公案)이라는 것이 생
겨났습니다. 이러한 공안에는 의미상, 과거의 조사들이 남긴 언행을 내
용으로 하는 고측 공안(古則公案)과 현재 생성되어 있는 것은 모두 움직
일 수 없는 진리라고 보는 입장에서 생긴 현성공안(現成公案)이 있습니 다.
다) 지역에 따른 분류
하나는 인도선이고 두번째는 중국선인데 중국선은 법화종 계통에서 하
는 천태선과 달마선사(達摩禪師)이후의 달마선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
므로 오늘날 전체적 유형은 인도선, 천태선, 달마선으로 구분하고 있습
니다.
⑴ 인도선(印度禪)
인도선의 기원은 요가(Yoga)에서부터 찾아집니다. 요가는 인도 고유의
수련법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불교의 禪과
요가의 다른 점은 요가수행의 최고 경지는 마음의 움직임이 일체 끊어
진 지멸(止滅)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요가의
최고 경지를 의식이 없으면서 의식이 없는 그것마저도 아닌 상태인 비상
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볼 때는 이것은 완전한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습니다.
인도선에서는 수식관(數息觀), 부정관(不淨觀), 백골관(白骨觀)등이 있
습니다. 수식관(비파싸나, Vipasvana)은 좌선하는 자세로 자신의 호흡
을 세는 데에 집중하여 마음의 산란함을 방지하는 관법입니다. 부정관
은 육신의 부정한 모양을 관하여 탐욕을 다스리는 관법이며, 백골관은
인간의 백골을 관하여 집착을 없애는 관법입니다.
⑵ 천태선(天台禪)
천태선은 중국에 와서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538-597)가 세운 법
화종에서 강조되었습니다. 천태선은 법화경을 비롯한 대승교리가 그 내
용이 되고 방법에 있어서는 인도의 요가 수련법을 그대로 형식상으로 옮
겨와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리하여 천태선은 법화경 사상과 인도의 요가
형식이 한데 어우러져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태선에서는
지관법(止觀法)을 쓰고 있는데, 즉 마음을 거두어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깊은 진리의 마음의 세계를 관조(觀照)하는 것입니 다.
⑶ 달마선(達摩禪)
달마선의 기원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견해와 학술적인 입장으로 크게 나
뉘어져 있습니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부처님의 삼처저심(三處傳心)
이 달마선의 기원이라고 봅니다.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법을 설하고 계셨는데 가섭존자가 늦게 왔습
니다. 가섭존자가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하고 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
께서 아무 말없이 앉아 계시는 자리의 반을 내어주자 가섭이 아무 말없
이 앉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같이 앉은 것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을 전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달마선은 조사선(祖師禪)이라고도 하며 묵조선(默照禪)과 간화선(看話
禪) 등이 있습니다. 묵조선은 정려(靜慮), 즉 생각을 고요히 맑히는 禪
이고, 간화선은 1700공안(公案)을 사용하여 화두를 간(看)하는 禪입니 다.
라) 수행하는 방법에 따른 분류
부처님으로부터 28대 조사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전한 선(禪)은 순수
한 인도의 관심선(觀心禪)이었지만 차츰 중국적인 것으로 면모를 바꾸면
서 체계화되어 갔습니다. 달마대사로부터 전승된 선(禪)이 6조 혜능(慧
能)대사 이후에는 여러 계파가 형성되어 9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5家 7
宗이 생겨나 선풍(禪風)을 드날리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南宋이후에 청원계(靑原系)의 조동종(曹洞宗)에서 나온 천동
정각(天童正覺)선사가 널리 편 묵조선과 임제종(臨濟宗)의 대혜종고(大
慧宗)가 확립한 간화선이 가장 대표적인 선풍이었습니다.
⑴ 묵조선(默照禪)
오로지 침묵만을 지언(至言)으로 삼는 것으로서 묵묵히 안으로 관찰하
여 그 마음을 청정케 하고 그 법(法)의 근원을 철견(徹見) 하는 것, 즉
인간의 마음이란 묵조(默照)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지 화두를 가지
고 의심하고 참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동종(曹洞宗)의 선법으로 묵조선의 입장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로 지관
타좌(只管打坐)란 말이 있습니다. 지관이란 '오직 한 길' 의 의미이며,
타는 '강조' 의 의미이고 좌는 '좌선'의 뜻으로, 잡념을 두지 않고 오
직 성성적적한 마음으로 좌선할 따름이라는 말입니다.
묵조선이란 이름은 묵조선가(默照禪家) 자신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
닙니다. 묵조선의 거장 천동정각(天童正覺,1091-1157) 선사가 '오직 앉
아서 묵묵히 말을 잊고 쉬어가고 쉬어가게 한다' 하였는데 이에 대혜선
사(大慧禪師)께서 그의 가르침을 비난하여 '묵조사선(默照邪禪)' 이라
지칭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⑵ 간화선(看話禪)
간화선(看話禪)이란 우주와 인생의 근원을 규명해 나가는데 있어 화두
(話頭)라는 문제를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참선법입니다. 글자 그대로 해
석하면 간(看)은 '본다' , '참고한다'는 의미이고 화(話)는 화두
로 '말'입니다. 여기서의 '말'의 의미는 보통의 '말'이 아니라 "말 이전
의 말"이고 "말 밖의 말"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화두는 부처님과 祖師스님들의 말씀이나, 행동, 그리고 문답으
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논리적으로 풀 수 없고 생각이 끊어진 세계를 나
타내는 말 이전의 말인 것입니다.
이러한 화두를 참구하여 항상 그것을 의심해 나감으로써 궁극에 가서는
의단(疑團, 의심덩어리)이 타파되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법이 바
로 간화선입니다.
흔히 간화선하면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을 일컫는데 현재 우리나라 선원
에서 행해지고 있는 선법의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① 사구선(死句禪) ; 화두를 부처님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
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해 들어가는 죽은 參禪
① 활구선(活句禪) ; 이치길(理路)도 없고 말길(語路)도 없이 이론을 사
용하지 아니하고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禪. 語句
에 대해 배우면서도 그 어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어구의 참된 의미
를 체득하는 것이 중시됩니다.
. 해동선사 (海東禪史) = 선의 한반도 전래
가) 삼국시대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
국의 전진왕 부견이 순도스님과 불상, 불경을 고구려에 보냄으로써 비롯
되었고, 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마라
난타가 인도로부터 들어옴으로써 전파되었으며, 신라는 제19대 눌지왕
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옴으로써 전래되었으나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에 의해 국교로 인정되게 되었습니다.
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불교도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고승대덕이
배출되었으니, 교종(敎宗)은
열반종(涅槃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嚴
宗), 법상종(法相宗), 법성종(法性宗)의 오종(五宗)이 흥성하여 이를 오
교(五敎)라고 합니다.
선종에 있어서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 당나라에 건너가서 4조 도신(道信)
선사의 법을 이은
법랑(法郞)스님을 들 수 있으나 그의 귀국년대가 확실
치 않아 그 다음에 선(禪)을 우리나라에 전래한 도의국사(道義國師)를
해동선(海東禪)의 초조(初祖)로 삼게 됩니다.
도의국사(道義國師)는 법명이 명적(明寂)으로 선덕왕5년(서기784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강서(江西)의 개원사에 이르러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전해 받고 법호를
도의(道義)로 받
았으며 백장회해(百丈懷海)께 나아가 뵈오니 "강서의 선맥이 모두 해동
의 스님에게로 돌아간다"라는 격찬을
들었습니다.
이후 헌덕왕13년(서기821년)에 귀국하였으나 교종의 융성으로 선(禪)을
신봉하는 이가 없어 강원도 진전사에
은둔하시다가 법을 염거화상(廉居
和尙)에게 전하시고 입적하셨습니다.
또한 도의국사(道義國師)와 동시대인으로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전
해 받은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계시며, 홍척국사(洪陟國師) 이후에 선종
(禪宗)에서도 고승대덕이
배출되어 흥덕왕조부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약 130여년간 선(禪)의 구산(九山)이 형성되었으니 교(敎)의 5宗과 함
께 신라불교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九山은 모두 6조 조계혜능(曹溪慧能)선사의 법손에 해당하므
로
조계종(曹溪宗)이라고도 합니다.
다) 고려시대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구산(九山)은 점차 쇠퇴해 가다가
대각국
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수입한 천태종이 선의 재부흥을 일으켜 바야
흐로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뒤 해동선(海東禪)의 중흥조 보조지눌국사(普照知訥國師)가 선교양종
(禪敎兩宗)을 통합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의 종지를
내세워 종풍을 회
복하였으며, 혜충왕때 가지산문의 법손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는 선의 구산문을 통일하여
조계일종(曹溪一宗)을 만들었으니 한국의 수
행자들은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의 법손(法孫)이 아닌 이가 없다
할 것입니다.
라) 조선 및 현대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부의 배불정책으로 불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으
로 다시
나뉘어졌고 일제시대에 이르러 전국 31본산이 통합되어 조계종
(曹溪宗)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니 우리 해동선(海東禪)은 태고보우국사
(太古普愚國師)를 종조(宗祖)로 삼고 총본산 사명(寺名)도 태고사(太古
寺)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60년대 비구·대처의 대립으로 총본산이 조계사(曹溪寺)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와같이 한국불교는 오교구산(五敎九山) → 오
교양종(五敎兩宗) → 선교이종(禪敎二宗)에서 조계일종(曹溪一宗)으로
변해 왔습니다.
'붓다메아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 선종사(中國 禪宗史) (0) | 2009.09.15 |
---|---|
[스크랩] 한국 선종사(韓國 禪宗史) (0) | 2009.09.15 |
[스크랩] [無門關] 제22칙 不思善惡 - 육조의 의발 (0) | 2009.09.15 |
[스크랩] 불교교리 : 중국불교의 이해 - 3. 제종(諸宗)의 사상과 수행관-4) 정토종 (0) | 2009.09.15 |
[스크랩] 불교교리 : 중국불교의 이해 - 3. 제종(諸宗)의 사상과 수행관-(3) 선종 (0) | 2009.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