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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메아리 ♬

[스크랩]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홍인(弘忍) 이후 선종은 크게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의 두 파로 나뉜다. 흔히 북종은 점교(漸敎)의 가르침을 설하고, 남종은 돈교(頓敎)의 가르침을 설한다고 하고 있다. 원래 북종(北宗)이라는 명칭은 혜능의 제자인 하택 신회가 개원(開院) 20년(732) 대운사에서 종론을 제기하면서 보리달마 남종(南宗)의 정법은 조계 혜능(慧能)을 계승했으며 북종(北宗)의 신수(神秀)는 방계(傍系)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종과 남종의 구분은 지리적인 구분에 따른 것이었으나 그 안에는 남종의 방계로서 북종을 폄하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종선의 사람들은 스스로 북종이라고 자칭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북종선은 양자강을 중심으로 낙양, 장안 등의 북쪽 지방에서 활약한 사람들의 통칭으로 사용한다.

처음에 그 세력이 우세했던 북종선(北宗禪)의 중심인물은 신수(神秀)였다. 신수는 변주위씨 출신으로 100세를 넘겨 장수한 명승이었다. 어려서 유학 및 노자와 장자의 전적에 정통하고 652년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50세 가까이 되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6년간 사사했다. 홍인의 법을 이은 후 의봉(儀鳳)년간에 형주 옥천사의 승적에 속하여 그 근처에서 도문사를 열었으며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였다고 한다. 701년에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아 가마를 타고 어전에 들어갔으며 그 때 그는 가신(家臣)의 예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양경(兩京)의 주주(注主), 삼제(三帝)의 국사라고 불리운다. 저서에 <관심론(觀心論)> 1권, <화엄경소> 30권, <묘리원성관(妙理圓成觀)> 등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후대의 서적 인용 가운데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신수는 홍인의 사상을 계승하여 독자적인 수행법을 설하고 있다. 신수는 요심수도(了心修道)를 설하고 있는데, 요심(了心)은 자심(自心)을 깨닫는 것이다. 그는 마음의 작용을 <기신론>에 의거하여 정심(淨心)과 염심(染心)이라는 두 종류의 차별심으로 보고, 정심(淨心)은 진여(眞如)의 마음이며, 염심(染心)은 무명(無明)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본래 정심과 염심을 갖추고 있다. 만약 진여를 자각하여 염심(染心)이 없으면 바로 성인이며, 악업을 따르면 범부로서 삼계에 침륜하게 되는데 이는 진여의 본체를 염심(染心)이 덮었기 때문이다. 즉 신수는 마음을 다스려 망견(妄見)에서 떠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수에 의해 북종선은 장안과 낙양의 황실 및 귀족의 귀의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북종선은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반세기 동안 보적(普寂)과 의복(義福) 등의 활약으로 북종선이 융성했지만 그 후로는 점차로 쇠약해져서 주류의 자리를 완전히 남종선에게 양보하게 된다.

남종선(南宗禪)의 시조는 혜능(慧能)이다. 혜능은 속성이 노(盧)씨이며, 선조는 대대로 범양(范陽)에 살았지만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하여 신주(新州)의 평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남해(南海)로 이주하여 땔나무를 팔아서 모친을 봉양하였다. 어느 날 마을의 손님 한 사람이 숙사로 돌아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홍인(弘忍)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8개월간 방아지기로 생활하면서 법을 이었다. 이 때 혜능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후 676년에 <열반경>의 학자로서 이름난 인종(印宗)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후 소주의 조계 보림사(寶林寺)에 거주하면서 많은 선자를 키우고 선풍을 날렸다. 그의 설법을 법해(法海)가 기록하였는데 이를 <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한다. 혜능은 대감선사(大鑑禪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육조단경>에서 밝힌 혜능의 선사상은 돈오견성설(頓悟見性說)과 반야바라밀이며, 그 구체적인 실천은 무념(無念), 무주(無住), 무상(無相)의 사상이다. 반야는 지혜로 일체시중(一切時中)에 한 생각 한 생각이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로 실행하는 것이 반야행이라고 한다. 또 반야삼매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곧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견성(見性)을 하는 것이 반야삼매에 드는 것이라고 설한다. 그리고 반야를 깨달은 것이 바로 무념(無念)이라고 하고 있다. 무념은 일체의 외부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으로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혜능은 자성청정심의 자각과 무념, 무주, 무상의 반야의 실천을 일체화하고 있다.

혜능의 문하 가운데서 남종선의 정통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한 사람은 하택 신회(神會)이다. 신회는 양양(襄陽) 출신으로 오경, 노장을 배운 후 출가하여 혜능의 만년에 그 문하가 되어 수 년간 배웠다. 732년에는 활대 대운사(大雲寺)에서 무차대회를 열어 천하의 학도자들을 모아 놓고 보리달마로부터 비롯된 남종의 정법을 이은 6조는 혜능이라고 주장하였다.

신회는 달마로부터 전래된 선불교의 근본은 여래선(如來禪)이며 불지견(佛知見)을 개연하는 것이라고 보고, 북종의 좌선관심(坐禪觀心)이 달마의 진의가 아니라고 배척하고 무념(無念)의 근저에 있는 청정한 자성(自性)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하였다. 신회에 의해서 북종의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신수는 마음을 집중시켜 선정에 들게 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어 그 청정함을 간(看)하게 하여 마음을 일으켜 밝게 비추고 마음을 섭수하여 안으로 증득케 하라고 주장하는데, 신회는 이러한 가르침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신회는 북종선의 법은 단순히 마음을 조복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서 남종선의 수행은 단순히 마음의 조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초월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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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북종선(北宗禪)과 남종선(南宗禪)
글쓴이 : 무구 김정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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