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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배우며 ♬

[제5강] 수필의 성격 - 1. 자조의 문학 / 권대근

제 5 강 수필의 성격 - 1. 자조의 문학 / 권대근

1) 자조의 문학


수필은 개성이 유달리 강한 일종의 고백적 자조문학이다. 문학의 어느 장르나 개성을 중요시하지만 수필만큼 노골화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서 수필은 개성의 향취가 물씬하게 풍기는 글이기도 하다. 시에서 개성을 언어 속에 용해시키고, 소설과 희곡에서는 표현 뒤에 숨기지만 수필은 겉으로부터 그것을 드러낸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마음을 드러낸다. 심지어는 자기의 취미 . 지식 . 이상 . 인생관 . 세계관 . 연애관 . 결혼관 . 도덕관 할 것 없이 습관까지도 솔직하게 노출시킨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기의 체취나 마음을 송두리째 맛보게 하는 그런 글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수필을 일러 고백적 자조문학이라 한다.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서문인 <독자에게>에서 "여기 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별 것 아닌 나를 보아주기 바란다."고 전제하고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내 자신"이며 "터놓고 보여 줄 수 있는 한도에서 그대로의 내 형태를 내놓는다"고 밝히고 "내 자신을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으리라는 것을 장담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자의 재료"임을 천명하였다. 이는 결국 『수상록』이 자아의 개성을 바탕으로 하는 고백적 자조문학임을 밝힌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수필과 자기를 <동질동체>라는 말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보아스(Boas)와 스미스(Smith)의 공저인 『문학의 요소』에서도 듣는다. 즉 "수필에는 작가의 기분과 개성이 나타난다. 다른 산문의 문학보다 직접 개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인생관이나 특수한 순간의 감상, 그렇게 되는 그 자신을 직접 독자에게 보여 준다."고 수필이 개성의 고백적 자조문학임을 말한다.

김광섭은 그의 『수필문학소고』에서 수필이 개성의 문학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의 위대한 수필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닥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심경적이라기보다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이 수필은 개성적인 글이되 심경적이고 경험적인 글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결국 수필이란 쓰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드러나 있는 산문임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살핀 바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면서 동시에 고백문학이요, 자조문학이기도 하다. 즉 자기 표현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일인칭으로 서술하게 되고, 자신이 터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생을 해석하고 이해해간다. 그것을 문학적인 미로 형상화시켜가는 문학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수필은 첫째 나를 드러내는, 개성의 향취를 수필화하는 문학이라는 점이 다른 장르의 문학과 다른 특징임을 이로부터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상허는 그의 『문장강화』에서 수필을 일러 '자기의 심적 나상'이라 했고, 최태호 또한 자기를 비추어 보는 자조문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수필이 자아를 드러내는 개성적 고백에의 자조문학이라는 점에서 자칫 신변잡기로 떨어질 위험이 없지 않다. 자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수필의 문학성이 요구된다. 문학성을 결정짓는 요인으로는 주제의 창의성, 적절한 은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도입, 설리를 위한 탄탄한 입체 구성, 소재나 제재의 의미화와 상징화를 들 수 있겠다. 문학성을 갖춘 수필을 한 문장으로 나타낸다면, 수필어로 창의성 있는 주제나 제재를 확대된 은유로 나타내면서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감동을 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성의 요건에 창의성 있는 주제가 들어가는 이유는 문장, 구성, 수필적 전개와 수법은 주제를 부추기는 보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수필의 새로운 정의, 즉 '수필은 주제나 제재 중심의 문학이다.'는 말에서 그 중요성이 확인된다고 하겠다. 알베레스는 수필이 문학성을 가지려면,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 신비적 이미지'로 형상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비유컨대 흔들리는 구슬들 사이에 반짝이는 그윽한 불꽃'처럼 미적 경로를 밟아 문학으로 형상화시켜야 한다. 수필의 감동은 문학성, 그로부터의 감동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