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강 수필의 성격 - 3. 제재의 문학 / 권대근
3) 제재의 문학
수필은 제재의 다양성을 보이는 문학이기도 하다. 다른 문학 장르도 제재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문학이지만 그것들은 정리되고 함축되어 기법에 융합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필은 그와는 달리 생생한 그대로를 드러내면서도 제재의 범위는 실로 넓고 다양하다. 인생문제나 사회문제는 물론 이 지구상의 삼라만상을 다 제재로 삼을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의 정신계까지도 그 제재로 삼을 수 있다. 즉 사람의 사유가 미치는 한에서는 무엇이든지 수필로 쓸 수 있는 제재들인 바 여기에 수필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음을 보게 된다. 김진섭은 그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든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필은 그 담은 내용과 그것을 요리하는 필자에 의해서 그 취향이 여러 가지로 변화할 것은 또한 물론이다. 그것을 요리하는 필자의 소질 여하에 의해서 혹은 경쾌한 만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요, 혹은 조리 있는 비평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여운이 높은 산문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니,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이 수필의 종별이 변화무쌍 할 것은 理의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문학은 수필에 의하여 자기의 영역을 넓히고 있고 또 자기를 풍부하게 하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필의 영역이 광대함을 시사한 말이다. 그 광대무변한 영역 속엔 다양한 제재가 있고, 그 제재로 인한 수필의 종류 또한 다양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기실 수필의 종류 또한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즉 과학적 수필, 철학적 수필, 비평적 수필, 역사적 수필, 종교적 수필, 개인적 수필 등이 있는가 하면 강연집, 설교집 등 넓게는 수필적 성격을 띤 것이 또한 없지도 않다. 백철은 그의 『문학개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용성에서 보아서 한계가 제한되지 않고 영토가 광대하다. 인간성에 관한 것이나, 습관이나, 역사나, 예술이나 교육 . 과학 . 정치 . 경제 . 종교 . 스포츠 등 모든 방면의 것이 수필의 주제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특정의 내용성이나, 주제의 의미에서 수필을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또한 수필 영토(영역)의 광대함과 그에 따른 제재의 다양성을 대변해 준다. 일본의 市島春城은 그의 『소정로잡필』에서 "수필은 백화점과 같은 것이므로, 어떠한 항목도 쓰여지지 못하는 것은 없다"고 하듯, 기실 수필의 제재는 백화점의 다양한 상품과도 같다. 다시 말하면 그 백화점은 협소한 백화점이 아니라 그 크기는 바로 이 우주라는 백화점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 진열할 수 있는 백화점인 바 이 백화점의 상품(제재)은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간을 초월해서 새롭고, 공간을 초월해서 다양하며 또 그것들은 사람에게 갖가지 정서와 상상과 사상을 갖게 한다. 오직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상품(제재)의 의미는 달라진다. A가 보는 견해가 다르고 B가 보는 견해가 다르다. 이처럼 새로운 의미를 낳는 상품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실로 다양하기만 하다. 김동리도 그의 『문학개론』에서 "문학 평론의 대상은 문학이요, 수필의 대상은 사유의 전영역 - 단편적일지라도 - 인 것이다"라고 하듯, 인간의 사유가 미치는 일체의 영역이 바로 수필의 영역이 된다. 그러기에 알베레스 또한 그의 『수필의 성격과 영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필 - 급속한 사색을 태우고, 회전하며 반짝이는 태양은 그 특유의 성격으로서는 모든 구실이 허용되고 있고, 따라서 그 영역은 놀라우리 만치 광대한 것이다. 드류우 . 라 . 로쉘르나니미에의 경우에는 세대의 고백일 수 있고, 베르나노스의 경우에는 분격과 엄격함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까뮈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적 도덕적인 경험을 단순하고 엄격한 말로 바꾸고 놓은 것이다. 발상의 출발점으로서는 그것이 문학이었건 정치였건 혹은 개인적인 경험이었건 일체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한 마디로 수필의 영역이 광대함을 말한다. 그 영역이 광대한 만큼 제재 또한 다양함을 실감케 한다. 그것이 '문학적이었건 정치였건 혹은 개인적인 경험이었건 일체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하듯 무엇이나 수필이 될 수 있는 제재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모든 수필은 다종다양한 제재를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재는 각자의 투철한 통찰력과 달관에 의해 선택되어져야 하며, 작자의 정서적 . 신비적 이미지를 거쳐 나온 생생하면서도 나름만이 갖는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수필은 감동으로서 교시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도의 지식과 관찰안을 구비한 사람이 인생과 사물을 방관자적 태도로 관찰하되 거기에서 느낀 감흥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 고백이 우리의 가슴을 때리기만 한다면 무엇을 쓰던 그것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래서 수필은 무엇을 써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요, 백화점이라 하지 않는가. 수필의 제재는 그만큼 다양하며 무엇이든지 쓸 수 있다는 데 나름의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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