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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자작글 ♬

추억의 대 보름

 

      추억의 대 보름/송정김순례 갑작스런 엄마의 전화 "야야~~너거는 나물 좀 안 가갈래? 씨레기라도 좀 가져다가 삶아 찌개라도 끓이지... 너거는 보름 준비도 안 하나?" 어머니의 손을 닮아 시들은 씨레기와 지난봄에 말린 산나물이랑 취나물에 담은 엄마의 마음을 눈물로 가져다 장만하고, 지정이랑 수수에 붉은 팥을 얹어 지은 오곡밥은 식구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만큼 찰진 밥이 되었다. 한해 동안 좋은 소리 들으려는 마음에 담근 국화주로 귀밝이 술도 한잔하고, 나쁜 기운 물리치듯 딱딱한 부럼을 망치로 두드리니, 의미도 모르는 채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 어린날의 보름을 회상해 본다, 잔설이 채 녹지 않은 언 땅 누우렇게 널브러져 있던 냉이도 가난했던 부엌 사정을 아는지 이맘때만 되면 여린 고개를 쏙 내밀었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넓은 밭고랑 사이를 오가며 캐던 냉이엔 얌생이 수염 닮은 잔뿌리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뜯어낸 전잎이 소쿠리 앞에 수북이 쌓일 때면, 다듬은 냉이보다 버리는 잎사귀가 많음을 안타까워하며 동무의 소쿠리를 넌지시 들여다보던 그때엔 손 시려운 것도 힘든 것도 몰랐고, 엄마의 가난이 뭔지도 몰랐었다. 비록, 없는 살림이지만, 한해를 부자이고 싶은 가마솥에 장작불 이글거리도록 엿을 고아 만든 강정을 설에도 쓰고, 보름날 부럼으로도 쓰려고 장독간 깊은 항아리에 감춰 두시던 엄마, 그 속을 알 리 없는 고만고만한 자식들에겐 심심할 때 빼먹던 곶감 만큼이나 맛난 과자였었고, 그것을 몰래 꺼내 먹다 들키는 날엔 마당 귀퉁이에 세워진 대빗자루로 쫓기는 신세가 되곤 했었다. 날이 밝기 전 첫새벽! 쌀단지랑 살강 위에는 성주님께 가족의 안녕을 비는 밥그릇이 올려지고, 안방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큰 상이 차려졌었다. 눈꼽도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마당에 나가 훠이훠이 새를 훑듯 액운을 쫓아내고 세 집의 오곡찰밥을 먹어야 건강하다며 오빠들은 어둔 길을 나가 온 동네를 돌았다. 해가 기울 저녁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산을 오르던 꼬맹이 장군들, 바람의 자취만큼 낮은 무덤가에 누군가 가져 온 성냥으로 모닥불 피워 놓고 입을 모아 부르던 달맞이 노래는 이젠, 수녀가 되어 소식을 알 수 없는 향숙이 만큼이나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떠오를 둥근 달 속에 가장 아름다운 소망 하나 담아야겠다. 항상 건강하고 모든 것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게 해달라고......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종지 이뤄지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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