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갈망하는 이들이야말로 시인이다. 시인의 삶의 절절한 체험이 상상력을 통한 시적 체험으로 올라서야 삶의 의미와 꿈을 담은 시가 된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잘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시적 전략이 중요하다.
첫째, 발견이다.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많은 삶의 편린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소재 자체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더라도 발견적 상상력이라는 엄격한 시선이 시를 관장하고 있고, 또한 그 밑에 시대상황 혹은 시대정신에 대한 주제의식이 치열하게 깔려 있다면 시로서 성공한 것이다.
독자들은 일정한 전이해(前理解)를 갖게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일종의 선입견으로,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 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은 다시 이해의 틀을 수정한다. 즉,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를 밝혀주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이해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둘째, 관찰이다.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 낼 수 있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반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셋째, 연상이다.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을 때 나 아닌 또 다른 존재를 향한 갈망 또한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곤혹스러운,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예전엔 느껴 본 적도 없던 이 독특한 감정이야말로 시와 다르지 않다.
완벽한 주관성, 타자에의 몰두,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지점이다.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힘이다.
넷째, 투사이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심정적 깨우침을 안겨주는 이 주관을 가?v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다섯째, 유추이다.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을 배운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 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시가 문제 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전복이다.
현상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의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이다.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 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인 상상력을 형성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도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어우러져 있다.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시적 상상력을 통해 시를 읽고, 나아가 시를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틀의 이면에 잠복해 있는 시정신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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